20110803 Fortune Cookie

오늘 무심코 고른 포춘 쿠키에서 나온 말: "당황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리기 바랍니다."

때로는 가까운 친구보다 심심풀이로 보는 인터넷 운세(오늘의 타로, 포춘 쿠키...)가 더 유용한 조언(또는 더 큰 위안)을 줄 때가 있다. 인터넷 운세 서비스가 굉장히 용하다거나, 가깝다고 생각한 친구가 실은 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놈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다(사실 "아니다"라고 쓰면서도 "어느 정도는/꽤/정말"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기도).

즉 애초에 내가 설정한 기대 수준에 따라 내가 얻는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 문제를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해주기를 바라는 기대치가 높은 데 반해(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심리적 친밀감/정서적 교류 자체가 성립 불가능한 인터넷 운세는 기대치가 높지 않으므로 내 문제, 내 과거/현재와 조금이라도 연관되어 보이는 얘기가 나오면 없던 신뢰감이 마구 솟아오른다. 만약 내가 아주 괴롭고 힘들 때 정말 기대고 싶었던 사람에게서 "당황하지 말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서..." 따위의 조언을 듣는다면 고마워하기는 커녕 "네가 뭘 알아!"하고 눈을 흘기며 어퍼컷을 날릴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에게 정말로 바라는 것은 유용한 조언/해결책이 아니라 "그래 힘들지, 네 맘 알아..."하고 그저 담요처럼 포근히 안아주는 것. 남이 보기에는 정말 별 것도 아닐 수 있는 일로 내가 절망의 나락에 빠져 허우적대도 "그깟 일로 무너지다니 그것밖에 안 되나!"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사랑의 채찍질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비극을 굳이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또는 이해한 척 하지 않고 "그래 내가 여기에 있어..."하고 조용히("마음껏 울어 넌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도 굳이 입밖에 낼 필요 없이) 안아주거나 손을 잡고 곁에 있어 주는 것.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상대에게는 포근한 담요를 기대하면서, 정작 본인은 말없는(상대를 평가/분석하거나 답답해 하지 않는) 담요 역할을 맡기 싫어한다는 데서 반전이/문제가 생긴다.

(일상 밸리에 두 줄짜리 글로 보내려고 쓰기 시작한 글이 어째 연애 밸리 느낌으로 마무리되어 버려서 연애 밸리로 보냄)


최선을 다해 도망쳤는데, 다시 붙잡혔다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야지, 하고 생각해 놓고 벌써 몇 주째 글을 올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렇지,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린다는 것은 사실 너같은 귀차니스트에게는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야, 의무감으로 쓸 필요는 없어, 언제든 내킬 때 즐거울 때 쓰면 되지'하고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아를 쪼개어 우울한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더 성숙한 나를 만들어낼 힘이 없다.

한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기대거나 징징거리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잘 보살피고 다독이며 명랑한 생활을 가꿔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마침내 가족과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이상적인 모습으로 성장했다고 뿌듯해했는데, 방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어두운 동굴에서 멀리 도망쳐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만 같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그저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는 하얗고 단단한 알 속으로 들어가서 웅크리고 자고 싶을 뿐.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해서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 글을 되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왜 내가 이렇게 나를 배신하는지 허탈할 뿐. 찾아주는 사람도 얼마 없는 블로그에 시덥잖은 글을 써놓고 혼자 키득키득 만족해하던 때가 아득히 먼 옛날처럼, 아니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분명 내가 쓴 글들인데, 별 것 아닌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키득거리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카운터테너 Philippe Jaroussky (필립 자로스키) - 내맘대로 골라본 Youtube Best 듣고

지난주 바흐솔리스텐서울 공연을 보고 갑자기 성악에 꽂혀서 이것저것 뒤적이다가, Philippe Jarousky라는 카운터테너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데 난 역시 뒷북종결자인가 보다 ㅎㅎ. 나를 한 방에 훅 가게 만든 것이 바로 아래 동영상(비발디의 아리아). 2007 Best French Lyrical Artist Award에서 우승한 영상이라고 한다. 나머지 경연자들의 노래는 못 들어봤지만, 이렇게 부르고도 수상하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할 듯!

태풍 메아리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던 며칠 동안, "요정의 애가"와 이 아리아를 주구장창 틀어놓고 지냈다. 창 밖에 제법 굵은 나무가 강풍에 부러지고 찢겨진 처참한 모습을 보며 구슬픈 노래들을 듣자니 시각적+청각적 효과의 상승 작용으로 왠지 비련의 (아리따운) 여주인공(쿨럭..ㅈㅅ)이 된 듯한 감성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발견한 Jaroussky의 유쾌한 공연 모습. 독창하는 자로스키와 합창하는 두 명이 배틀하듯이 노래를 번갈아 부르는데, 서로 '좀 별론데' 하는 듯한 표정 연기와 제스처가 재미나다. 중간에 선글라스를 꺼내 쓰지 않나 ㅋㅋ. 청중들도 편안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듣는다. 하지만 눈을 감고 들으면 전혀 장난스럽지 않고 진지하고 아름다운 음악이다. 중간 중간 카메라에 잡힌 연주자 언니의 웃는 얼굴도 일품이다(알고 보니 이 언니가 보통 언니가 아니였어. 글 맨 아래에 + 추가). 다들 즐겁게 공연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오늘도 장마비에 꿀꿀한 날씨지만, 안 어울리는 비련의 여주인공 감성보다는 아래 영상처럼 유쾌한 기분에 흠뻑 젖어서 바쁘게 움직이는 하루를 보내야 겠다.

왜냐면, 일이 밀렸으니까! (으이구 또냐~)



+ 오옷. 웃음띤 얼굴로 연주하는 언니가 보통 분이 아니었구나.. 이름은 "Christina Pluhar"로, 바로크 음악 전문 악단 Arpeggiata의 창시자라고 한다. 링크된 홈피에 들어가봤는데 영어는 없고 죄다 불어 OTL.

+ 필립 자로스키 아시는 분은 추천곡이나 음반 좀 덧글로 남겨주세요. 덧글이 잘 안 달려서 굶어 죽기 전에 구걸하고 나서 봅니다. 덧글 거지는 더끄흘, 더끄흘(덧글 덧글)~하고 울지요. 자존심 따윈 개나 줘버리고! 파핫.

Monteverdi - Lamento della Ninfa의 노래방 버전(악보) 듣고

아래글에 올린 "요정의 애가"의 노래방 버전. 설마 진짜 노래방을 생각한 분은 없겠죠? ㅋ

노래 진행에 맞춰 악보 페이지가 넘어가는데 소프라노+남자 3명 합창 성부가 모두 나옵니다. 악보로 보니 참 단순하기 그지 없네요(나도 작곡이나 해볼까 -_-a). 노래로 들으면 뭔가 더 있어 보이는데...

그 어느 악기보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말인가 봅니다. 물론 사람도 사람 나름...쿨럭.

2:07 지점부터 Amor~ 소프라노 시작입니다.
이탈리아어를 아시거나 성악 하시는 분은 노래방으로 생각하고 따라 부르실 수도 있겠네요. 부럽습니다.
+ 아! 이탈리아어 아시는 분은 가사 내용 한 소절이라도 번역해서 or 전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연녀의 처절한 노래라고 알고 있긴 한데 가사를 야후 바벨 피쉬에 넣어 돌려보니(이탈리아어->영어)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 것 같네요. 아래 이탈리아어 가사 올립니다.

이탈리아어 가사 클릭하여 펼쳐 보세요

Lamento della Ninfa

Amor
(dicea)
Amor
(il ciel mirando, il piè fermò)
Amor, amor,
dov’è la fe’
ch’el traditor giurò?
(miserella)
Fa’ che ritorni il mio
amor com’ei pur fu,
tu m’ancidi ch’io
non mi tormenti più;
(Miserella ah più, no,
tanto gel soffrir non può)
Non vo’ ch’ei più sospiri
se non lontan da me.
No no, che i suoi martiri
più non dirammi, affé!
(Ah miserella. Ah più no no)
Perché di lui mi struggo?
Tutt’orgoglioso sta;
che sì, che sì, s’il fuggo
ancor mi pregherà.
(Miserella, ah, più non
tanto gel soffrir non può)
Se ciglio ha più sereno
colei che il mio non è,
già non rinchiude in seno
Amor sì bella fe’.
(Miserella, ah, più non
tanto gel soffrir non può)
Nè mai sì dolci baci
da quella bocca havrai
nè più soavi… ah taci,
taci, che troppo il sai!
(Miserella!)
Sì, tra sdegnosi pianti,
spargea le voci al ciel:
così ne’ cori amanti
mesce Amor fiamma e gel.

Claudio Monteverdi, Madrigali, VIII, 1638




Lamento della Ninfa (요정의 애가) 듣고

20110625 국립중앙박물관 토요문화마당 <<바흐솔리스텐서울>> 공연에서 인상깊게 들은 곡. 실연녀(요정...)의 처절한 소프라노를 메인으로 무려 3명의 남자(알토, 테너, 바리톤)가 합창을 해주는 곡이다. 소프라노 보컬 뒤에 듬직하게 서 있는 세 명의 남자분들을 보면서 계속 생각한 건 "언니 그렇게 처절하게 노래 부르지 말고 3명 중에 하나 고르시면 되겠네예..." 실연녀 노래면 혼자서 처절하게 불러야 하지 않나? 역시 예쁘면(요정이라니) 배경으로 노래 불러주는 남자 세 명은 기본으로 따라 주는 거였군.

(컨디션이 바닥인데 바흐솔리스텐서울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비바람을 뚫고 무리해서 갔더니 역시 이런 이상한 생각만...한 것은 아니고 정말 좋은 공연 잘 감상했습니다.)

장소가 "으뜸홀"이라고 해서 강당인 줄 알았는데 뻥 뚫린 "로비"에서 하는 무료 공연이라 몇 가지 괴로운 상황이 펼쳐졌다. 음악 전문 공연장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음질 별로인 스피커를 사용했고(첫 곡 이후 뭔가 재조정한다고 하시더니 나아짐) 주변이 어수선해서 처음에는 괜히 왔나 싶었고(점점 나아졌다), 공연 중에 플래시 터뜨리며 사진 찍는 사람들 카메라를 뺏어버리고 싶었으며...벤치에 여러 명이 밀착해서 앉아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 소리없이 방귀를 살포한 사람도 할 수만 있다면 꼭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발휘해서 멋진 공연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한다.

전단지에 적힌 프로그램에는 작곡자만 있고 곡명이 빠져 있어서, 용기내어 물어보지 않았다면 내 메멘토 기억력으로 이 노래 제목도 모를 뻔 했다. 곡목들을 꼭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공연 끝나자마자 진행 요원인 듯한 분에게 가서 곡명을 알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볼펜도 없이 어떻게 베껴 적나 걱정했는데 상냥한 요원분이 무려 손에 들고 있던 "큐시트"를 냉큼 양도하셨다. 리허설 시간표와 곡목, 곡마다 악기와 보컬 편성이 인쇄되어 있고 뒷면에는 "가져가지 마시오!"라는 준엄한 손글씨가 써 있어! 아하하하하. 구겨진 종이 쪼가리지만 왠지 귀한 기념품을 얻은 듯. 그런데 관련된 분들 핸폰 번호까지(...) 적혀 있네. 물론 내가 전화할 일은 없지만 왠지 전화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사실 할 수만 있다면 전화하고 싶음...바로크 음악과 바흐솔리스텐서울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전화번호는 지워놔야겠다. 혹시 조증 모드에서 진짜 전화할지도 모르니ㅋ



앉아 있기도 힘든 컨디션이었는데(오버하지 맙시다..그런데 어떻게 걸어갔남) 가길 잘했다. 세상은 내가 움직이는 만큼 보인다. 집에 오니 저질체력에 역시 몇 시간 외출이 무리가 되어 후유증이 있지만, 마음은 좀 충전이 된 것 같다. 이제 일만 하면 되는데! 졸리네 쿨쿨(일도 밀린 주제에 나갔다 와서 체력 방전됨).

+ 바로크 음악 관심있는 분은 바흐솔리스텐서울 강추합니다. 12월에 헨델을 주제로 공연 예정이라는데 기대되네요. 달력에 포스트잇 부착 완료!

+ "몬테 베르디"를 태그로 달아놓고 정작 본문에는 언급을 안 했다는 -_-. 이탈리아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가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장르인 마드리갈(세속적인 성악곡, 언어와 음악 예술이 최상의 경지에서 결합한 예술로 평가되기도 함)을 궁극적인 정점으로 끌어올린 작곡가이자, 바로크의 선구자이기도 하여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

+ 마드리갈 - (아래는 "몬테베르디 : 마드리갈 명곡집 코르시카 라이브" 음반 설명에서 퍼온 글입니다.)
오랫동안 르네상스-바로크의 올바른 가창법이 잊혀졌기 때문에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은 음악학자에게나 중요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몬테베르디와 초기 바로크 작곡가들이 의도했던 것처럼 언어와 음악의 깊이있는 결합을 깨닫게 되자 생생하고 풍부한 감정으로 몬테베르디의 마드리갈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그 매력을 알아차리는 음악팬도 생겨나게 되었다.

>> 언어와 음악의 깊이있는 결합이라니! 하악하악. 음악이 좋아도 가사(내용)가 싫으면 못 듣는 노래가 많은 나에게는 "마드리갈"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드리갈 잘 아시는 분은 추천곡 좀 덧글로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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